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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눈물도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 조두희 <그리움은 끝나지 않아>에서 불행해 본 사람이 작은 행복에도 감사한다 그리움을 힘들어하지 마라 마음속에 그리움 숨겨 논 사람이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 하지 마라 잠시 잠깐 행복하기 위해 긴 설레임도 만들질 않더냐 잠이 ..
신발이 나를 신고 / 이재무 (1958- ) 주어인 신발이 목적인 나를 신고 직장에 가고 극장에 가고 술집에 가고 애인을 만나고 은행에 가고 학교에 가고 집안 대소사에 가고 동사무소에 가고 지하철 타고 내리고 버스 타고 내리고 현관에서 출발하여 현관으로 돌아오는 길 종일 끌고 다니며 날마다 닳아지는..
실 / 문인수 (1945-) 나는 그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 양손에다 실타래의 한 쪽씩을 걸고 그걸 또 당신 쪽으로 마저 다 감았을 때 나는 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는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빗소리.
오월의 연주 / 조두희 <그리움은 끝나지 않아>에서 별들이 논에 놀러와 발가벗고 물장구친다 바람이 달을 휘어 현絃을 매어 미루나무에 걸어 놓으면 개구리 뛰어들어 오월을 연주한다 소쩍새 우는 저녁 내 발도 논으로 간다 저자 소개 *경기 가평 출생 *계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
물 만드는 여자 / 문정희 (1947-) 딸아, 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 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려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
문막 들 / 고은 (1933- ) 남한강 건너 원주 강릉 가는 길 가지 말라 가을 걷이 문막 들 두고 가지 말라 빈 논마다 타작마당 짚 흩어 불놓으니 여기저기 순하디순한 고모부 같은 연기 푸르렀다 가지말라 문막 들 순이 내일 모레면 시집간다 다 빼앗긴 듯한 다 잃어버린 듯한 마음 그 아가씨네 개하고나 정들..
無花果 / 주용일 (1964-) <꽃과 함께 식사> 중에서 안으로 숨어든 젖꼭지, 함몰 유두를 아느냐 너를 젖먹일 수 없어 몸속으로 꽃 피우다 보니 뿌리까지 둥근 유선이 열렸다 가지에 잎에 도는 흰 젖, 내가 나를 젖먹이는 일만큼 슬픈 일이 지상 어디에 있겠느냐 바깥으로 젖꼭지 밀어내지 못하여 내 젖..
무인도 / 이생진 (1929- )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무인도라고 찌푸리는 것은 섬이 아니라 물살이다 외로워 살 맛이 없다고 엄살을 부리는 것은 등대가 아니라 소나무 소리다 백년을 살아도 살 맛이 없다고 신경질 부리는 것은 바위가 아니라 풍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