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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1901-1943)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
봄맞이 / 배한봉 (1962-)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시집 <대해 속의 고깔모자>에서 흙냄새 훗훗하니 몸도 가뿐하다 첫 봄비 머금은 나무 둘레 작고 예쁜 손 흔드는 풀들을 보아라 연둣빛 때깔 너무 고와 저 할머니는 허리도 안 아프겠다 실그렁실그렁 거름더미 괭이로 잘 펴고 북돋우면서 사람살이 ..
‘아줌마’라는 말은 / 김영남 (1957-)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시집 <대해 속의 고깔모자>에서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에도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하고 불면 낯익은 얼굴..
혼자 사는 어머니 / 이생진 (1929- ) 나이 70. 1929년생 일제 강점하에 태어난 것도 얼울한데 말년엔 남편 중풍으로 쓰러져 3년 동안 간병하느라 다 죽어가던 세월 영감을 산언덕에 묻고 나니 휘휘 방안엔 찬바람만 그득하다고 그래도 아침엔 동백꽃처럼 단단하다가 저녁엔 호박꽃처럼 시들해진다며 아랫..
희망을 위하여 / 곽재구 (1954-)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안은 두 팔은 놓지 않으리 나의 뜨거운 마음이 두터운 네 등 위에 포근히 내릴 수 있다면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더욱 깊어져 네 곁에 누울 수 없는 내 마음까지도 편안한 어머님의 무릎 잠처럼 고요하게 나를 누일 수 있다면 그러나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1954- ) <슬픔의 뿌리> 중에서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
해삼 / 이생진 (1929-)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일출봉 입구에서 해삼 파는 아주머니 손을 잡아당기며 해삼 먹으라고 기운에 좋으니 먹고 가라고 내가 바다 앞에서 기운을 내면 얼마나 내나 해삼을 바다에 주어 바다보고 더 기운내라지
행복 / 유치환 (1908-1967)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