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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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 – 조창환 시인(1945-)현대시/한국시 2024. 5. 21. 11:19
아래의 시는 어제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당신이 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 – 조창환 시인(1945-) 나팔꽃 새순 돋아허공에서 길 찾는 거 보셨수?뾰족한 끄트머리가아침 이슬 어루만지는 거 참 신기하쥬? 아직 눈 안 뜬 두 이레 강아지꼬물거리는 거 보셨수?보드랍고 연하고 따뜻하쥬? 당신 손녀딸 애깃적젓니 돋아나는 거 보셨수?말랑한 얼굴에 하얀 이 돋아방긋 웃는 거 이쁘쥬? 그 애기 좀더 커서 벚꽃 잎 하르르흩어져 떨어지는 거 보면서춤추는 발레리나 같다고말하는 거 보면 짜릿하쥬? 그게 당신이살아 숨쉬어야 할 까닭이유 자고 깨면 사람들은전염병 걱정으로 가득 차입 가리고 코 가리고서로 경계하고 눈치 보며 피할 때 집에 일찍 들어가당신 마누라 작고 못생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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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발을 하며 - 임영조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5. 19. 11:27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이발을 하며 - 임영조 시인 일요일 아침이발소 거울 앞에 앉으면한 달 전에 헤어진 나를 만난다 말없이 주고 받는 눈인사그새 우리는 많이 수척해졌군,그것은 결코 새로 미친 바람탓 스스로 전부를 맡긴다서슬퍼런 가위와 칼날 앞에머리를 맡기고, 얼굴을 맡긴다손발을 맡기고, 믿음까지 맡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듯타인의 독선 앞에 괸대했던가 정중하게 빛나는 가위 속에서검게 자란 시간이 잘려나간다턱 밑에 무성하던 교만이단칼에 모조리 스러질 때는감격으로 차라리 눈을 감는다 조심조심 귀를 후빈다밖에서 들은 치욕의 말씀들이귓밥이 되어 웃음이 되어시원하고 간지럽게 빠져나온다 그러나 눈에 박힌 가시는 또어디 가서 파낼 것인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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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빨래를 하십시오 - 이해인 수녀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5. 18. 16:04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빨래를 하십시오 - 이해인 수녀 시인우울한 날은빨래를 하십시오맑은 물이소리내며 튕겨울리는노래를 들으면마음이 밝아진답니다애인이 그리운 날은빨래를 하십시오물 속에 흔들리는그의 얼굴이자꾸만 웃을 거예요기도하기 힘든 날은빨래를 하십시오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누구를 용서하기 힘든 날은빨래를 하십시오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향기를 맡으며마음은 문득 넓어지고그래서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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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떤 주례사 – 안홍열 시인(1949-)현대시/한국시 2024. 5. 16. 21:06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어떤 주례사 – 안홍열 시인(1949-) 주례를 서기 위해과거를 깨끗이 닦아 봉투에 넣고전철을 탔는데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풍경이예사롭지가 않다키가 아주 큰 남편이 고개를 깊이 숙이고키가 아주 작은 아내의 말을열심히 귀 기울여 들으며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초등학교 일 학년 학동 같다그렇다, 부부란 키를 맞추는 것이다키를 맞추듯 생각도 맞추고꿈도 맞추고목적지도 맞추는 것이다그렇게 살다가 내릴 역에 다다르면눈빛으로 신호를 보내말없이 함께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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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인생이란 그런 것 - 김시천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5. 13. 15:29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 - 김시천 시인살다 보면 하나 둘쯤 작은 상처 어이 없으랴속으로 곪아 뜨겁게 앓아 누웠던아픈 사랑의 기억 하나쯤 누군들 없으랴인생이란 그런 것그렇게 통속적인 일상 속에서가끔씩 아련한 상처 꺼내어 들고먼지를 털어 훈장처럼 가슴에 담는 것그 빛나는 훈장을 달고 그리하여 마침내저마다의 그리운 하늘에 별이 될 때까지잠시 지상에 머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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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품部品이 없다 – 홍윤숙 시인(1925-2015)현대시/한국시 2024. 5. 13. 15:27
아래의 시는 어제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부품部品이 없다 – 홍윤숙 시인(1925-2015) 어디선가 무시로바람이 빠지고 있다내 몸 어디엔가 구멍이 났나 보다바람 빠진 고무풍선이 되어 흐느적거린다바람을 넣고 싶다 씽씽 바람을 넣어다시 탱탱한 튜브가 되고 싶다누군가 저만치 서서피시시 실소하며 눈 찡긋거린다너무 오래된 구식 차형이라바꿔 넣을 부품이 어디에도 없다그냥 그대로 움직이는 날까지 끌고 다녀라그 길밖에 없다고 못을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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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개꿈 – 오탁번 시인(1943-2023)현대시/한국시 2024. 5. 11. 22:08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개꿈 – 오탁번 시인(1943-2023)평균 수명 채우려면 앞으로 10년,살아온 날 생각하면10년이야눈 깜짝할 사이인데,참 이상하다겨우 10년밖에 안 남은 세월이무한대無限大로 느껴진다백수白壽하고 싶니?참 뻔뻔스럽다그렇다 뻔히 보인다짧고 굵게!젊은 날의 숱진 맹세 죄다 까먹고흐지부지 살아온 나는앞으로 어느 날죽음을 눈앞에 두고도또 이럴 것이다곧 사윌 목숨인 줄도 모르고무한대로 남아 있는 내 생애가은하수 물녘까지 뻗칠 거라고개꿈을 꿀 것이다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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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 신동문 시인(1928-1993)현대시/한국시 2024. 5. 9. 15:04
아래의 시는 4.19 혁명 때 신동문 시인이 쓴 시이다.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 4·19의 한낮에 신동문 서울도 해 솟는 곳 동쪽에서부터 이어서 서 남 북 거리 거리 길마다 손아귀에 돌 벽돌알 부릅쥔 채 떼지어 나온 젊은 대열 아! 신화(神話)같이 나타난 다비데군(群)들 혼자서만 야망(野望) 태우는 목동(牧童)이 아니었다 열씩 백씩 천씩 만씩 어깨 맞잡고 팔짱 맞끼고 공동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우는 아! 새로운 신화 같은 젊은 다비데군들 고리아테 아닌 거인 살인 전제(殺人專制) 바리케이트 그 간악한 조직의 교두보 무차별 총구 앞에 빈 몸에 맨주먹 돌알로서 대결하는 아! 신화같이 기이한 다비데군들 빗살 치는 총알 총알 총알 총알 총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