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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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시 - 나태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1. 11. 19. 10:24
일하면서 라디오를 듣다가 에서 나태주 시인의 시 가 소개되었는데, 좋아서 전문을 인터넷에서 찾아 아래에 소개해본다. 두고 두고 읽고 싶다. 이런 시를 나도 쓰고 싶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시 / 나태주 시인(1945-)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이 시를 읽고 난 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에 대해 사소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모래의 낱 알갱이가 구르는 일도, 한 번의 물결이 일어나는 일도, 한 자락의 바람이 동쪽으로 불어가는 일도 예사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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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는가 - 박노해 시인현대시/한국시 2021. 9. 16. 22:22
무엇이 남는가 — 박노해 시인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성직자에게 직위를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무엇이 남는가 빼 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그리하여 다시 나에게 영혼을 빼 보라 나에게 사랑을 빼 보라 나에게 정의를 빼 보라 그래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그래도 태연히 내가 살아간다면 나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박노해 시인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1년 10월28일 목요일 덧붙임 좋은 책 많이 읽으려고 하지만 좋은 글로 발전하는 건 다른 문제이고, 이 역시 꾸준함이 필요하단 점 잘 알지만, 삶의 유혹들이 가만 나두지 않는다. 지천명을 넘어 이순으로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불혹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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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이준관현대시/한국시 2021. 8. 26. 14:34
비 -- 이준관 어렸을 때는 내 머리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비를 맞으면 해바라기 꽃처럼 쭉쭉 자랄 것 같았다 사랑을 할 때는 우산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둘이 우산을 받고 가면 우산 위에서 귓속말로 소곤소곤거리는 빗소리의 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았다 처음으로 집을 가졌을 때는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비가 좋았다 이제 더 젖지 않아도 될 나의 생 전망 좋은 방처럼 지붕 아래 방이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리고 지금 딸과 함께 꽃씨를 심은 꽃밭에 내리는 비가 좋다 잠이 든 딸이 꽃씨처럼 자꾸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을 보는 일이 행복하다 2021.7월호에서 옮겨 적음. 비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렇게 이쁘게 잘 적은 시인의 행복한 삶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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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옷 한 벌 -- 박일규현대시/한국시 2021. 8. 26. 14:25
검정 옷 한 벌 -- 박일규 수녀님! 검정 옷 한 벌 거저 입으신 게 아니시지요 조촐한 봇짐 챙겨 드시고, 아무 생각 없는 듯 어금니만 지그시 물고 살던 집 조용히 떠나시던 날 돌아 누운 어머니 한밤중에 일어나 딸이 비우고 간 빈방에서 얼마나 목메어 울었을거나 "너희는 이것을 받아 먹으라" "너희는 이것을 받아 마시라" 어느 새벽이었을까 딸과 어머니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뼈가 녹는 감사의 눈물을 흘리신 것은....... 수녀님! 검정 옷 한 벌 거저 입으신 게 아니시지요 2021.4월호에 실렸는데 이곳에 모셔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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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나를 슬프게 한 일들 - 정채봉현대시/한국시 2021. 8. 23. 12:18
월간독자 Reader 2021.6월호를 읽다가 좋은 시가 하나 나와서 간직하려고 타자해본다. 오늘 내가 나를 슬프게 한 일들 by 정채봉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지 못했네 목욕하면서 노래하지 않고 미운 사람을 생각했었네 좋아 죽겠는데도 체면 때문에 환호하지 않았네 나오면서 친구의 신발을 챙겨 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느낌 정채봉 님은 동화작가로 돌아가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이런 울림있는 시를 쓰셨나! 사소한 선행, 사소한 배려, 사소한 사랑이 나를 키우고, 나의 마음이 한 뼘 자라게 할 지 모른다. 너무 계산적이지 말고 내어주는 삶을 살도록 다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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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오리형 연적 - 월탄 박종화현대시/한국시 2021. 5. 27. 08:31
청자 오리형 연적 - 월탄 박종화 선은 가냘픈 푸른 선은 아리따웁게 구울러 보살같이 아담하고 날씬한 어깨여 4월 훈풍에 제비 한 마리 방금 물을 박차 바람을 끊는다. 그러나 이것은 천년의 꿈 고려청자기! 빛깔, 오호! 빛깔 살포시 음영을 던진 갸륵한 빛깔아 조촐하고 깨끗한 비취여 가을 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하늘 한 조각 물방울 뚝뚝 서리어 곧 흰 구름장 이는 듯하다. 그러나, 오호 이것은 천년 묵은 고려청자기! ------ 연적: 옛날에 벼루에 물을 따르는 물건. 이 시는 이충렬의 306쪽에 실린 시이다. 시의 제목은 내가 임의로 붙인 것이고, 이 책에는 시의 제목이 따로 나와있지 않다. 다만 이 시는 청자 오리형 연적을 보고 월탄 박종화 선생이 쓴 헌시라고 이 책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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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하루 / 가수 이적현대시/한국시 2021. 4. 17. 22:36
엄마의 하루 / 가수 이적 습한 얼굴로 AM 6:00이면 시계 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지친듯 무거운 얼굴이 돌아온 아들의 짜증과 함께 다시 싱크대 앞에 선다 밥을 짓다 설거지를 하다 방바닦을 닦다 두부 사오라 거절하는 아들의 말에 이게 뭐냐고 무심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주저앉아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언 동태가 되고 아들의 찬 손이 녹고 따끈히 끓이는 된장찌개의 맛을 부끄러워하며 오늘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무심히 아들들에게 되뇌이는 '강철 여인'이 아닌 '사랑 여인'에게 다시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