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
(시) 어머니의 오월 - 김근이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5. 28. 10:10
어머니의 오월 - 김근이 시인 오월이 꽃들을 거느리고 사월이 깔아놓은 초록 숲에 내려앉았다 화려한 귀환이다 제법 따가워진 햇볕아래 밀짚모자 눌러 쓰고 밭고랑을 누비시던 어머니의 오월 그 세월만큼이나 서러워지는 오월에 기대여 바라보면 그때 세월이 슬프게 안겨온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언덕 오월이 꽂아놓은 깃발이 가슴을 펄럭이게 하는 세월 난간에 선 어머니 돌아보면 화살같이 스쳐간 어머니의 세월 그 세월 속에 심어두고 온 눈물 꽃 피우지 못해 죄인으로 돌아간 인생 아쉬워 이 오월을 기다렸을까 그 혹독한 보릿고개를 숨차게 오르시는 어머니의 잦은 발걸음에 채이든 오월이 그 세월을 벗어던지고 지금은 왕관을 쓰고 화려하게 돌아오고 있다
-
(詩) 스승의 기도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5. 16. 15:01
스승의 기도 – 도종환 시인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짓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개 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 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
(詩) 듣는 사람 - 이시영 시인(1949-)현대시/한국시 2022. 4. 27. 19:39
듣는 사람 – 이시영 시인(1949-)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제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탑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
(詩) 생각이 달라졌다 - 천양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4. 19. 23:13
아래의 시(詩)도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좋아서 인터넷에서 전문을 찾아 보았다. 생각이 달라졌다 – 천양희 시인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 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 빛이란 이따금 어둠을 지불해야 쐴 수 있다는 생각 웃음의 절정이 울음이란 걸 어둠의 맨 끝이 빛이란 걸 알고 난 뒤 내 독창이 달라졌다 웃음이란 이따금 울음을 지불해야 터질 수 있다는 생각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별처럼 나는 골똘해졌네 어둠이 얼마나 첩첩인지 빛이 얼마나 겹겹인지 웃음이 얼마나 겹겹인지 울음이 얼마나 첩첩인지 모든 그림자인지 나는 그림자를 좋아한 탓에 이 세상도 덩달아 좋아졌다 이하는 23년 8월 19일 추가 - 문학과지성 시인선 496 (2017년)에서 -
-
(詩) 그렇지 않더냐 - 오세영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4. 19. 23:03
라디오 를 듣다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시인데 좋아서 인터넷을 찾아 전문을 찾았다. 이하는 그 시의 전문이다. 제목: 그렇지 않더냐 시인: 오세영 (1942-) 모든 추락하는 것들이 거듭나나니 땅에 떨어져 새싹을 틔우는 씨앗이 그렇지 않더냐 겨울의 마른 나뭇가지 위에서 뚝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열매, 가문 허공에서 후드득 떨어져 흙을 적시는 빗방울, 아래로 아래로 미련없이 떨어지는 것들이 마침내 새 생명을 잉태하나니 어찌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라 탓할 수 있으랴, 모든 금간 것들이 또 새로운 세상을 여나니 깨져 자신을 버림으로써 싹 틔우는 씨앗이 그렇지 않더냐. 금 간 바위 틈새 사이로 빠끔히 내미는 난초꽃 대궁, 갈라진 구름 틈새로 화안히 내비치는 맑은 햇살, 한 생을 다스려 집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