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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극단 / 김광회(金光會) 시인 먼 조상의 땅과 그 시절이 되살아 오는 크라이막스 말 없는데 말 있어 미어질 듯한 가슴의 이런 무언가 아아 애초에 우리들은 꼭 저랬으리라 벙어리 벙어리 귀머거리 돌아가자 영원이라 다만 손에서 입에서 가슴에서 손으로 입으로 가슴으로 옮아가느니..
청노루 / 박목월(朴木月) 시인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밝은 하늘: 조병식 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읽다가 발견한 시
공항에서 쓸 편지 / 문정희 시인 여보, 일 년만 나를 찾지 말아주세요 나 지금 결혼 안식년 휴가 떠나요 그날 우리 둘이 나란히 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겠다고 혼인 서약을 한 후 여기까지 용케 잘 왔어요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고 아니 오아시스가 사막을 가졌던가요 아무튼 우리..
꽃이 피기 위해서는 / 김소엽 시인 (강남 전철역 스크린 도어에 걸린 시) 꽃이 그냥 스스로 피어난 것은 아닙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햇빛과 물과 공기가 있어야 하듯이 꽃이 저 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꽃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벌과 나비가 있어야 하듯이 꽃의 향기가 저절로 멀리..
물소리2 / 문효치 시인 (합정역 스크린 도어에 걸린 시) 베어보면 그 속은 새벽이다 엊저녁 달빛 아직은 젖은 채 갈잎더미 밑에 있고 그 달빛에 미쳐 울던 풀벌레 소리 여운으로 날아다니는데 그래도 여명의 소근거림은 시간의 옷자락에 푸르스름 물들어 저 언덕을 넘고 있나니
구름이야기 / 박종래 시인 회색치마 자락에서 졸던 아이 두등실 떠올라 하품 하고는 소나기 목물해주고 사라지네 젖은 하늘 말리던 햇살융단 흰 여인이 앉아 목화송이 젖은 속옷 하나씩 벗어 널고 드러난 몸매 하늘 연못 백로 한 마리 나래를 펴 가는 곳 어디론가 노 젓는데 파도가 숨차 ..
먼 여름 / 이상호 시인 푸른 입들 하나같이 눈부신 노래 부르는 그 즐거운 나라로 말 달려가고 싶다. 아무리 채찍질해도 닿을 수 없는 벼랑처럼 아스라한 그대여 내 마음에 무수히 살면서도 도무지 삶이 되지 않는 어떤 꽃처럼 먹먹한 그대여 내가 모르는 어느 먼 곳에서 소리 없이 피고 지..
봄 너를 기다리며 / 노희정 시인 살얼음 낀 너의 속마음 네 속살 빨리 보고 싶어 네가 몹시 그리워 내 맘 먼저 다가가 보는데 때가 돼야 배시시 열리는 진달래꽃잎처럼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한 건지 네 문 앞에 서서 네 맘 사르르 열릴 때까지 나 기다릴래 나 기다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