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 김현승 (1913-1975) 검은 빛 / 김현승 (1913-1975) 노래하지 않고, 노래할 것을 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묻지 않고 꽃마다 품 안에 받아들이는 빛. 사랑하기보다 사랑을 간직하며, 허물을 묻지 않고 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 모든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치면, 숨기어 ..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거짓말 / 유안진 (1941-) 거짓말 / 유안진 (1941-)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은 어디서 마주칠까 외나무다리 건너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혀서일까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 사이에 나는 살고 있다 마주칠까 겁나 오도 가도 않고 다만, 그저 그냥 살고 있다. 거짓말도 유전된다 문 닫고 들어오고 문 닫고 나가라고 이르..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거미줄 / 정호승 (1950-) 거미줄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194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194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 현대시/한국시 2009.04.20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 양애경 (1956-)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 양애경 (1956-) 사람은 누구나 가까워지면 위험해진다 내가 그를 상처내거나 그가 나를 상처내거나 그래도 피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네가 몇 세기 전 어둠 같은 눈길로 내게 말했다 그 눈길이 나를 깊이깊이 상처 내어 갑자기 피가 강하게 맥박치며 넘쳐흘렀다 현대시/한국시 2009.04.20
가자미 / 문태준 (1970-) 가자미 / 문태준 (1970-)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현대시/한국시 2009.04.20
반지의 의미 / 정호승 (1950-) 반지의 의미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만남에 대하여 기도하자는 것이다 만남에 대하여 감사하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아름답자는 것이다 처음과 같이 순결하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말자는 것이다 사랑에도 외로움이 기다.. 현대시/한국시 2009.04.19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1950-)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가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동안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 현대시/한국시 2009.04.19
안개꽃 / 정호승 (1950-) 안개꽃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얼마나 착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깨끗하게 살았으면 죽어서도 그대로 피어 있는가 장미는 시들 때 고개를 꺾고 사람은 죽을 때 입을 벌리는데 너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똑같구나 세상의 어머니들 돌아가시면 저 모습으로 우리 헤어져도 저 모.. 현대시/한국시 2009.04.18
봄비 / 변영로 (1898-1961) 봄비 / 변영로 (1898-1961)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기쁜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어렴풋이 나.. 현대시/한국시 2009.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