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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내게 짠물인가 / 주용일 (1964- ) <꽃과 함께 식사> 중에서 바닷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했다 마실수록 갈증이 난다 했다 날마다 그리움이라는 갈증으로 허덕이며 사랑이라는 목마름으로 애가 타며 왜 나는 당신이라는 짠물을 마시는 것인가 나를 한없이 물켜게 하는 당신은 왜 내게 그리..
새소리가 만드는 곡선 / 주용일 (1964- ) <꽃과 함께 식사> 중에서 동틀녘 그대 꿈자리의 이불 걷으며 홀연히 날아오르는 박명의 새를 아는가 고단한 이웃의 누군가 새벽 대문 나설 때 지상의 우둔함을 깨우며 팽팽한 전깃줄 위 튀어오를 듯 앉아 온 몸 악기로 태양이 허공에 그리는 오색 빛살 음계 ..
지삿개*에서 / 주용일 (1964- ) <꽃과 함께 식사>에서 수십 척 깍아 지른 벼랑 내려다보며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곰솔들, 아찔하다 생각하시겠지만 걱정 마시라 그들에겐 벼랑이 일상이다 벼랑 내려다보는 아찔함이 한 생의 푸르름이다 절벽에 핀 노란 감국에겐 수직이 한 생을 이루는 평지다 수직의 ..
내 주책이 심하다 / 밝은하늘 2009/5/11(월) 엄마도 짜증을 내고 아버지도 화를 내고 이쁜 아가씨도 토라지고 그러나 돌하루방 같은 하느님은 내가 뭐라 해도 심지어 욕을 씨부려도 귀가 먹었는지 들은 채도 않고 태평하게 팔짱끼고 앉아 졸며 끝내 묵묵부답이다 하느님은 미련 곰탱이다! 하느님은 미련 ..
비 안 맞고 그 다리를 건넜을까 / 밝은 하늘 2009/5/11(월) 하루종일 봄이 비처럼 주루룩 내리는 질펀한 아스팔트길 뒷산에서 빛을 찾아 내려온 바람이 어둠의 어깨위로 살며시 다가가 우산을 받쳐주며 걷는다 달빛 아래 홀로 스탠드만 상념의 안개를 뿜는구나 그는 오늘도 비 안 맞고 그 다리를 잘 건넜..
라면을 끓이다 / 이재무 (1958-) 늦은 밤 투덜대는, 집요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신경 가파른 아내의 눈치를 피해 주방에 간다 입다문 사기그릇들 그러나 놈들의 침묵을 믿어서는 안 된다 자극보다 반응이 훨씬 더 큰 놈들이다 물을 끓인다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실업을 사는 날이 더 많은 헌 냄비는 자부..
떠나가는 배 / 박용철 (1904-1938)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두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가치 물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자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겨 가는 마음..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1950-)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