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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의 길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
빈털터리 / 임동후 신부님 수녀님 빈털터리야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과 성서와 묵주, 그런데도 왜 늘 웃으며 살까 뭐가 매일 그리 즐거우실까 금은보화 모두 하늘에 쌓아
비바람 / 한용운 (1879-1944) 밤에 온 비바람은 구슬같은 꽃숲품을 가엽시도 짖저(=짓이겨) 노았다. 꽃이 피는 대로 핀들 봄이 몇날이나 되랴만은 비바람은 무슨 마음이냐. 아름다운 꽃밭이 아니면 바람불고 비올 데가 없더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1901-1943)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
한 소녀가 / 밝은 하늘 2009/5/13(수) 한 소녀가 지하철역 계단에 바람처럼 반짝이는 그림자의 분신 낙엽 앞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놓고 영화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걸 뒤쫓던 내 마음이 앞을 못보고 걷다가 그만 맨홀뚜껑 속에 빠진 날 - - - - - - - - 예쁜 육체도 시선을 끌지만 예쁜 마음도 시선을..
맹자 가라사대 / 밝은 하늘 2009/5/14(목) “왼쪽 어깨가 아프네요” “자세가 안 좋아서 생긴 거에요” “자 엉덩이 오른 쪽을 받치니 좀 덜 아프지요?” 바른 자세는 본래 유지해야 할 자세라 흐트러지기 이전의 자세라 자세를 잃는 것은 습관 때문이라 편한 욕구 때문이라 습관은 나를 망치기도 하고 ..
봄맞이 / 배한봉 (1962-)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시집 <대해 속의 고깔모자>에서 흙냄새 훗훗하니 몸도 가뿐하다 첫 봄비 머금은 나무 둘레 작고 예쁜 손 흔드는 풀들을 보아라 연둣빛 때깔 너무 고와 저 할머니는 허리도 안 아프겠다 실그렁실그렁 거름더미 괭이로 잘 펴고 북돋우면서 사람살이 ..
‘아줌마’라는 말은 / 김영남 (1957-)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시집 <대해 속의 고깔모자>에서 일단 무겁고 뚱뚱하게 들린다 아무 옷이나 색깔에도 잘 어울리고 치마에 밥풀이 묻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은 낯설어하지만 골목에서 아이들이 ‘아줌마’하고 불면 낯익은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