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526

(시) 기쁨 – 천상병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기쁨 – 천상병 시인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 제낀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생색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같다.

현대시/한국시 2024.04.22

(시) 별들의 야근 – 김선태 시인

아래의 시는 2022년에 샘터에서 펴낸 이해인 수녀님의 에 실린 21년도 현대시학 10월호에 실린 시이다. 이해인 수녀님이 좋아하는 시라고 책에서 밝힌 시이다. 별들의 야근 – 김선태 시인 우주에 사는 별들은 해가 퇴근하면 출근한다 밤새 눈을 비벼가며 새벽까지 반짝반짝 야근한다 아주 흐린 날을 빼고는 사시사철 결근이 없다 달처럼 보름 주기로 휴가도 가지 못한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야근하는 별들 때문이다

현대시/한국시 2024.04.21

(시) 아들의 나비 – 전윤호 시인(1964-)

아래의 시는 오늘 오후 백승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FM 풍류마을》에서 소개된 시이다. 아들의 나비 – 전윤호 시인(1964-) 나는 여태 구두끈을 제대로 묶을 줄 모른다 나비처럼 고리가 있고 잡아당기면 스르르 풀어지는 매듭처럼 순수한 세상이 어디 있을까 내 매듭은 잡아당겨도 풀리지 않는다 끊어질지언정 풀리지 않는 옹이들이 걸음을 지탱해왔던 것이다 오늘은 현관을 나서는데 구두끈이 풀렸다며 아들이 무릎을 꿇고 묶어주었다 제 엄마에게 배운 아들의 매듭은 예쁘고 편했다 일찍 들어오세요 버스 정류장까지 나비가 따라왔다

현대시/한국시 2024.04.20

(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 시인(1939-)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되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 시인(1939-)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 - 부 -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 세계사에서 펴낸 정현종 시집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중에서 -

현대시/한국시 2024.04.20

(시) 오이 밭 – 박화목 시인(1924-2005)

아래의 시는 어제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되었다. 오이 밭 – 박화목 시인 희미해지는 내 어릴 적 추억에서 지금도 설명하야 잊을 수 없는 것은 달밤 오이 밭에 같이 앉아 오이를 따먹으며 나의 손을 고옥 쥐던 순이의 얼굴이었다 이 밤도 달빛은 의구히 환 하노니 아해처럼 오이를 한입 물었으나 잠시 미각을 잊고 잠시 추억에 잠기노라

현대시/한국시 2024.04.20

(시) 어머니의 눈물 – 박목월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어머니의 눈물 – 박목월 시인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 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 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 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 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 빛

현대시/한국시 2024.04.18

(시_4.16. 10주기)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아래의 시는 금년 3월 18일에 업로드 한 시인데, 오늘 4.16 세월호 10주기를 맞이하여 고인들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 올린다.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 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 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

현대시/한국시 2024.04.16

(시) 환절기 - 임영조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환절기 - 임영조 시인 밖에는 지금 건조한 바람이 불고 젖은 빨래가 소문 없이 말랐다 생나무가 마르고 산이 마르고 도시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사람들은 늘 갈증이 심해 내뱉는 말끝마다 먼지가 났다 가슴이 마르니까 눈만 커진 채 안부를 물어도 딴전이나 부리며 저마다 귀를 빨리 닫았다 저 멀리 좌정한 산이 어깨를 들썩이며 기침을 하자 온 마을엔 별의별 풍문이 나돌고 긴장한 나무들은 손을 들고 떨었다 세상은 이제 누군가 불만 댕기면 활활 타버릴 인화성 물질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날은 단 한 방울 눈물도 보이지 말고 자나 깨나 불조심 오나 가나 입조심 어쨌거나 요즘은 환절기니까.

현대시/한국시 2024.04.14

(시) 작은 연가(戀歌) - 박정만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되었던 시이다. 작은 연가(戀歌) -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현대시/한국시 2024.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