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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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름밤 – 강소천 시인(1915-1963)현대시/한국시 2024. 8. 2. 12:06
아래의 시는 8월 1일 목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여름밤 – 강소천(1915-1963) 반딧불을 쫓아가면,빗자루를 둘러메고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멍석 핀 마당에 앉아 술래잡기를 했다.별인 양 땅 위에선 반딧불들이 죄다 잠을 깬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은 언제나 훨훨 날아외양간 지붕을 넘어가곤 하였다. 반딧불이 사라진외양간 지붕엔하얀 박꽃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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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봉선화 모종 - 박금례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8. 2. 12:04
아래의 시는 지난 7월 31일 수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봉선화 모종 - 박금례 비가 오면 세계문화유산 화성 둘레길에봉선화 모종을 해야지 부처님이 주신 마음 잘 간직하고 있다가 창밖의 비소리 반가와라핸드카에 잔뜩 실은 봉선화 외국 품종이라 꽃송이가 장미꽃 같아서꽃 피면 지켜보는 관광객들 표정도 활짝 피어날테지 비 오던 어린 시절,들깨 모종을 하던 할머니 모습이 정겹게 지나가네 우산을 받쳐 줄 사람 없어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비를 맞으며봉선화를 심었더니 오메 온몸에 봉선화 물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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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여름밤이 길어요 - 한용운 스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7. 29. 10:20
아래의 시는 어제 7월 28일 일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되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여름밤이 길어요 - 한 용 운 당신이 계실 때에는 겨울밤이 쩌르더니 당신이 가신 뒤에는 여름밤이 길어요책력의 내용이 그릇되었나 하였더니 개똥불이 흐르고 벌레가 웁니다긴 밤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긴 밤은 근심바다의 첫 물결에서 나와서 슬픈 음악이 되고 아득한 사막이 되더니 필경 절망의 성(城) 너머로 가서 악마의 웃음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시면 나는 사랑의 칼을 가지고 긴 밤을 깨어서 일천(一千) 토막을 내겠습니다당신이 계실 때는 겨울밤이 쩌르더니 당신이 가신 뒤는 여름밤이 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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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바느질하는 손 – 황금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7. 29. 10:18
아래의 시는 7월 27일 토요일 오전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바느질하는 손 – 황금찬 시인 자정이 넘은 시각에도 아내는바느질을 하고 있다.장난과 트집으로 때묻은 어린놈이아내의 무릎 옆에서 잠자고 있다. 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얼음처럼 차다.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오늘따라 면경을 본다. 겹실을 꿴 긴 바늘이 아내의 손끝에선사랑이 되고때꾸러기의 뚫어진 바지 구멍을아내는 그 사랑으로 메우고 있다. 아내의 사랑으로 어린놈은 크고어린놈이 자라면 아내는 늙는다. 내일도 날인데 그만 자지,아내는 대답 대신쓸쓸히 웃는다. 밤이 깊어질수록 촉광이 밝고촉광이 밝을수록아내의 눈가에 잔주름이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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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보문동 – 권대웅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7. 20. 22:12
아래의 시는 오늘 밤 라디오 방송 《청하의 볼륨을 높여라》에서 소개되었던 시이다. 보문동 – 권대웅 시인 미음자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쌀을 씻는 어머니 어깨 위로 뿌려지는 찬물처럼 가을이 왔다반쯤 열린 나무 대문을 밀고 삐그덕 들어오는 바람마당에 핀 백일홍 줄기를 흔들며 목 쉰 소리를 낸다곧 백일홍이 지겠구나 부엌으로 들어가는 어머니 뒷모습이 아득하다툇마루에 놓여 있던 세발자전거햇빛이 너무 좋아서 그 곁에서 깜빡 졸고 일어났을 뿐인데백발이 되었다기와지붕 너울 너머로 날아가는 나뭇잎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구름들꽃잎에 섞인 빗방울의 날들 어둑해지는 처마 밑으로 우수수 떨어진다지금 여기가 어디지? 몇 세기를 살고 있는 것이지? 돌아보면 어둑어둑 텅 빈 마당 어머니가 꼭 잠가 놓고 가지 않은 수돗물 소리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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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늙어가는 길 - 윤석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7. 19. 10:21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라디오 방송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늙어가는 길 – 윤석구 시인처음 가는 길입니다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입니다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어릴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너무 어렵습니다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그래도 가다 보면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노욕인 줄 알면서도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