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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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6. 29. 11:55
아래의 시는 어제 오후 라디오 모 프로그램에서 잠깐 인용된 시이다. 프로그램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시인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비로소 여행이란,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객지밥 먹다가 석삼 년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먼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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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황홀한 거짓말 – 유안진 시인(1941-)현대시/한국시 2024. 6. 29. 11:14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황홀한 거짓말 – 유안진 시인“사랑합니다”너무도 때묻은 이 한마디 밖에는다른 말이 없는 가난에 웁니다처음보다 더 처음인 순정과 진실을이 거짓말에다 담을 수밖에 없다니요한겨울밤 부엉이 울음으로여름 밤 소쩍새 숨 넘어가는 울음으로“사랑합니다”샘물은 퍼낼수록 새 물이 되듯이처음보다 더 앞선 서툴고 낯선 말“사랑합니다”목젖에 갈린 이 참말을황홀한 거짓말로 불러내어 주세요- 유안진 시집 ‘거짓말로 참말하기’ 중에서 -링크: 쓰디쓴 인생살이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시인 유안진https://woman.donga.com/people/article/all/12/129230/1 쓰디쓴 인생살이를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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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 차옥혜 시인(1945-)현대시/한국시 2024. 6. 17. 18:06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농부는 바람에 백기를 들지 않는다 – 차옥혜 시인(1945-) 콩밭에는 콩만고추밭에는 고추만심고 길러야 하는 농부의 밭에바람은 수시로 와쇠비름, 클로버, 새포아풀, 애기똥풀 엉겅퀴, 환삼덩굴, 메꽃, 강아지풀 ……잡초를 옮겨놓는다바람의 심술에아니 세상 모두가 제 땅이고제가 경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바람의 아집 때문에 농부는 손가락이 아프며 등뼈가 굽고옆구리가 결리며 무릎이 쑤신다그래도 농부는 바람에백기를 들지 않는다 들 수 없다맞서 뚫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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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저 거리의 암자 - 신달자 시인(1943-)현대시/한국시 2024. 6. 14. 11:20
무산 스님 시인을 검색하다가 아래의 시를 알게 되었다. 저 거리의 암자 - 신달자 시인 어둠이 깊어가는 수서역 부근에는트럭 한 대 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주인과 손님이 함께출렁출렁 야간 여행을 떠납니다.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잡다한 번뇌를 싣고 내리고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빗댄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속풀이 국물이 바글바글 냄비에서 끓고 있습니다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젓가락으로 잡던 산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답답한 것이 산낙지 뿐입니까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 버린 여자도서울을 통채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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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손에 대한 예의 – 정호승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6. 14. 11:02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손에 대한 예의 – 정호승 시인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에 입을 맞출 것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일 년에 한 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들 것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 볼 것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