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을 위하여 / 곽재구 (1954-)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안은 두 팔은 놓지 않으리 나의 뜨거운 마음이 두터운 네 등 위에 포근히 내릴 수 있다면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 더욱 깊어져 네 곁에 누울 수 없는 내 마음까지도 편안한 어머님의 무릎 잠처럼 고요하게 나를 누일 수 있다면 그러나 ..
희망의 바깥은 없다 / 도종환 (1954- ) <슬픔의 뿌리> 중에서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은 온다. 가장 ..
해삼 / 이생진 (1929-)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일출봉 입구에서 해삼 파는 아주머니 손을 잡아당기며 해삼 먹으라고 기운에 좋으니 먹고 가라고 내가 바다 앞에서 기운을 내면 얼마나 내나 해삼을 바다에 주어 바다보고 더 기운내라지
행복 / 유치환 (1908-1967)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
하늘 / 박노해 (1956-)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스승의 기도 / 도종환 (1954- )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
버릴 것 하나도 없으니 / 안도현 (1961-) 나사못 하나가 기관차를 달리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 나사못이 기관차를 끌고 간다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이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밥이 쓰다 / 정끝별 (1964-) 파나마A형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다 변해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다 밥이 쓰다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밥이 쓰다 돈을 쓰고 머리를 쓰고 손을 쓰고 말을 쓰고 수를 쓰고 몸을 쓰고 힘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