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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본다 / 이생진 (1929- )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성산포에서는 교장도 바다를 보고 지서장도 바다를 본다 부엌으로 들어온 바다가 아내랑 나갔는데 냉큼 돌아오지 않는다 다락문을 열고 먹을 것을 찾다가도 손이 풍덩 바다에 빠진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
바다를 담을 그릇 / 이생진 (1929- )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서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 (1945-)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
몸 바꾸기 / 이명수 (1945-) <울기 좋은 곳을 안다> 중에서 늘 몸이 문제야 그렇게 살아온 몸을 몇 년째 바꾸고 있다 차를 버리고 맨몸으로 가기 지하철 한두 대 떠나보내고 타기 휴대폰 울려도 모른 척하기 오늘 약속한 글을 한 며칠 미루어 두기 그래서 욕먹어도 그냥 웃어넘기기 내가 쓴 시가 세상..
몸의 기억 삼식이論 / 이명수 (1945-) <울기 좋은 곳을 안다> 중에서 참 놀라운 일입니다. 얼마 전 대명포구에 갔을 때에요. 어판장 고무 자배기에서 물 좋은 삼식이 몇 마리를 골랐습니다. 가게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단숨에 목을 쳐 머리는 검은 비닐 봉지에 넣어 주고 몸은 회를 쳐 주었습니다. 그..
몸의 기억 木鐸論 / 이명수 (1945-) <울기 좋은 곳을 안다> 중에서 스님이 오랜만에 절집에 돌아오셨다 법당에 들어가 목탁을 치셨다 목탁이 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목탁도 자주 쳐 주지 않으면 제 소리를 잃고 만다 제가 목탁인 것을 잊은 것이다 꽹과리, 징도 자주 쳐 주지 않으면 쇳소리를 잃고 만..
목마와 숙녀 / 박인환 (1926-1956)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1903-1950)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