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1043

(시) 바람의 말 – 마종기 시인(1939-)

아래의 시는 어제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시이다. 따로 메모지에 기록해 두지 않아서,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바람의 말 – 마종기 시인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현대시/한국시 2024.03.30

(시) 꽃밭에 물을 주며 / 황명걸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세상에 멋진 시는 참 많고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표현하는 것이고, 내것이라고 해도 매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매일 새로워져야 한다는 걸 배운다. 매일 새로워진다는 것, 매일 새로운 시각을 견지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매번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삶에서 재미와 흥미는 좋을 것이다. 꽃밭에 물을 주며 / 황명걸 시인 아침 눈뜨자 꽃밭에 물을 준다 여린 들꽃에 사랑을 쏟는다 메말라 가는 마음에 눈물을 뿌리듯이 가지가지 들꽃 세상 밝은 동자꽃에서 손자를 본다 푸른 패랭이꽃에서 손녀를 본다 새촘한 초롱꽃에서 아내를 본다 하늘대..

현대시/한국시 2024.03.26

(시) 내 고향 - 김억 시인(1896-1948)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김억 시인은 김소월 시인의 스승으로 알려진 분이다. 내 故鄕 - 金億(岸曙) 시인 내 고향은 곽산의 황포가외다 봄노래 실은 배엔 물결이 놀고 뒷산이란 접동 꽃 따며 놀았소. 천리 길도 꿈속엔 四.五십리라 오가는 길 평양은 들려 놀던 곳 어제 밤도 가다가 또 못 갔쇠다. 야속타 헤매는 맘 낸들 어이랴 지는 꽃은 오늘도 하늘을 날 제. 아지랑이 봄날을 종달새 우네. 육로천리 길 멀다 둘 곳 없는 밤 이날도 고향 찾아 떠나는 것을.

현대시/한국시 2024.03.24

(시)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언제까지고 우리는 너희를 멀리 보낼 수가 없다 - 신경림 시인(1935-) 아무도 우리는 너희 맑고 밝은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물속에 갇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밤마다 별들이 우릴 찾아와 속삭이지 않느냐 몰랐더냐고 진실로 몰랐더냐고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걸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이토록 바르지 못했다는 걸 우리가 꿈꾸어 온 세상이 이토록 거짓으로 차 있었다는 걸 밤마다 바람이 창문을 찾아와 말하지 않더냐 슬퍼만 하지 말라고 눈물과 통곡도 힘이 되게 하라고 올해도 사월은 다시 오고 아름다운 너희 눈물로 꽃이 핀다 너희 재잘거림을 흉내 내어 새들도 지저귄다 아무도 우리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나 아무 먼 나라로 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바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뜨거운 열망으로 비는..

현대시/한국시 2024.03.18

(시)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시인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의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된 산문시이다.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시인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움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현대시/한국시 2024.03.16

(시)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

아래의 시는 3월 14일 목요일 주현미의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

현대시/한국시 2024.03.16

(시) 십일조 - 도종환 시인

십일조 - 도종환 시인 새벽에 깨어 블라인드 틈을 손가락으로 열었더니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밤안개의 꼬리가 강 하류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보인다 어머니 새벽미사 나가실 시간이다 어머니처럼 꼬박꼬박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하느님과는 자주 독대를 한다 독대를 한다고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엊그제 핀 상사화가 일찍 졌다는 말 어제 하루와 두끼 식사에 감사하고 어제도 되풀이했던 실수와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분노하는 이들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 그런 시시콜콜한 말을 주고받는다 주로 내 혼잣말이 길고 그분은 듣기만 하실 때가 많다 내 아침기도가 고요로 채워져 있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교황님과 독대할 순 없어도 하느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건 고요 덕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꼬박꼬박 바치지는 못하지만..

현대시/한국시 2024.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