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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오르다 / 김규동 (1925-) 추석날이면 소주 한 병 들고 남산에 올라 혼자 울었다. 북쪽 고향 하늘 그리며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울은 아직 빌딩의 숲이 아니었고 하늘은 맑고 대기오염같은 것도 없었다. 남산은 우리 모두의 산 서울의 심장 남산에 오르지 못한 지도 한참 되었다.
살다가 보면 / 이근배 (1940-)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
글: 주대가(朱大可) 신문화운동의 중요한 영향은 바로 현대성 숭배와 혁명의 광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문화가 국민개조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확인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혁명"적인 청소수단에 의하여 일거에 문화폐단을 제거함으로써 정치제도전환에 기..
콩알 하나 / 김준태 (1949- )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 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驛前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 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 주었다 그때 사방 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 (1902-1934)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소월시집>에서-
낙화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섬진강에 꽃 떨어진다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 매화꽃 떨어진다 지리산 어느 절에 계신 큰스님을 다비하는 불꽃인가 불꽃의 맑은 아름다움인가 섬진강에 가서 지는 매화꽃을 보지 않고 섣불리 인생을 사랑했다고 말..
낙 화 / 이 형 기 (1933-2005)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
나무에 대하여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나는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가 더 아름답다 곧은 나무의 그림자보다 굽은 나무의 그림자가 더 사랑스럽다 함박눈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쌓인다 그늘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그늘져 잠들고 싶은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