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위로 받고 싶은 맘 - 홍수희 시인 위로 받고 싶은 맘 - 홍수희 시인 가을걷이 끝난 휑한 들판에 어깨와 어깨를 비비며 서 있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맘 다 안다고 니 등 내 등 서로 토닥이며 서 있었다 위로 받고 싶은 맘 내게 있다면, 내가 먼저 너를 위로하리라 갈대꽃 하얗게 속삭이며 서 있었다 웬수야, 너도 이리와 봐라 사랑은 이런 거다 니도 와서 니 슬픔을 비벼보아라 갈대꽃 눈雪빛 스크럼을 짜고 있었다 현대시/한국시 2022.10.09
(詩) 새로운 길 – 윤동주 시인 새로운 길 – 윤동주 시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현대시/한국시 2022.10.09
(詩) 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 시인 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 시인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현대시/한국시 2022.10.09
(詩) 먼 후일 – 김소월 시인 먼 후일 – 김소월 시인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현대시/한국시 2022.10.09
(詩) 절벽 - 이형기 시인 (1933-2005) 절벽 - 이형기 시인 (1933-2005)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말라 높게 날카롭게 완강하게 버텨 서 있는 것 어스라한 그 정수리에선 몸을 던질밖에 다른 길이 없는 냉혹함으로 거기 그렇게 고립해 있고나 아아 절벽! 현대시/한국시 2022.10.09
(詩) 갈대 - 신경림 시인 (1936-) 갈대 - 신경림 시인 (1936-)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현대시/한국시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