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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시인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시인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현대시/한국시 2022.10.24

(詩) 쌀 / 정일근 시인

쌀 / 정일근 시인 서울은 나에게 쌀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웃는다 또 살을 발음해 보세요, 하고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나에게는 쌀이 살이고 살이 쌀인데 서울은 웃는다 쌀이 열리는 쌀 나무가 있는 줄만 알고 자란 그 서울이 농사짓는 일을 하늘의 일로 알고 살아온 우리의 농사가 쌀 한 톨 제 살점같이 귀중히 여겨온 줄 알지 못하고 제 몸의 살이 그 쌀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쌀과 살이 동음동의어라는 비밀을 까마득히 모른 채 서울은 웃는다

현대시/한국시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