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24

(습작시) 내 장례식에서 듣고 싶은 음악

아래의 시는 이번 달에 쓴 詩이다. 이 무렵에도 이 詩를 쓰고 나서 다음 날 몇 십년 알고 지내던 그러나 관계가 그리 깊지는 않았던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아무튼 이 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아래와 같은 시를 써보았다. 이런 걸 시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국가 애도 기간이라 시의적절해보인다. 그리고 나는 아래의 詩대로 내 장례식에서 음악을 틀어주기를 미리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내 葬禮式에서 듣고 싶은 音樂 22년 10월 08일 토요일 나의 葬禮式에서 듣고 싶은 音樂은 이렇다. 내 存在의 根源인 神에게 돌아가는 거니 Phil Coulter의 을 듣고 싶다. 죽는다는 건 떠나는 자에겐 기쁜 일이나, 남은 자들에겐 슬픈 일이기도 하니, 韓國 歌曲 를 틀어주면 좋겠다. 또 도 듣고 싶은데, 샤..

현대시/습작시 2022.10.31

(습작시) 왜 기도하는가

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다음달 5일까지 국가애도 기간이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아무 잘못없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 친구들을 위해 신께 기도한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젊은이들이 사랑과 정의의 神 안에서 영원하고 진정한 기쁨과 안식을 누리길 기도하옵나이다." 왜 기도하는가 - 밝은 하늘 22년 10월 26일 수요일 나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겠다 신의 무조건적 사랑과 전폭적인 지지를 느끼고 확인하고자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너무나 쉽게 죄의식 앞에 무너지고 절망하는 사람들 죄나 잘못보다 죄와 잘못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과 두려움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해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나의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 나의 존재이유를 찾기 위해 그래서 진정한 ..

현대시/습작시 2022.10.31

(詩) 은행나무 – 박형권 시인

은행나무 – 박형권 시인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어주면 햄버그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닢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맞나 낙엽 쓸어 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 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

현대시/한국시 2022.10.30

(詩) 밥 생각 – 김기택 시인

밥 생각 – 김기택 시인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현대시/한국시 2022.10.30

(詩) 전봇대는 혼자다 – 장철문 시인

전봇대는 혼자다 – 장철문 시인 말라깽이 전봇대는 꼿꼿이 서서 혼자다 골목 귀퉁이에 서서 혼자다 혼자라서 팔을 길게 늘여 다른 전봇대와 손을 잡았다 팔을 너무 늘여서 줄넘기 줄처럼 가늘어졌다 밤에는 보이지 않아서 서로 여기라고 불을 켠다 서로 맞잡은 손과 손으로 기운이 번져서 사람의 집에도 불이 켜진다

현대시/한국시 2022.10.30

(詩) 푸른 밤 - 나희덕 시인

푸른 밤 - 나희덕 시인 너에게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떠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현대시/한국시 2022.10.30

(詩)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시인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시인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여름인데.

현대시/한국시 2022.10.25

(詩) 봄 여름 가을 겨울 – 진은영 시인

봄 여름 가을 겨울 – 진은영 시인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현대시/한국시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