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5 4

(詩)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시인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나희덕 시인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여름인데.

현대시/한국시 2022.10.25

(詩) 봄 여름 가을 겨울 – 진은영 시인

봄 여름 가을 겨울 – 진은영 시인 작은 엽서처럼 네게로 갔다. 봉투도 비밀도 없이. 전적으로 열린 채. 오후의 장미처럼 벌어져 여름비가 내렸다. 나는 네 밑에 있다. 네가 쏟은 커피에 젖은 냅킨처럼. 만개의 파란 전구가 마음에 켜진 듯. 가을이 왔다. 내 영혼은 잠옷 차림을 하고서 돌아다닌다. 맨홀 뚜껑 위에 쌓인 눈을 맨발로 밟으며

현대시/한국시 2022.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