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의 봄날 - 박서영 시인 이사 다닌 집들이 눈사람처럼 녹아 사라져버렸다 환한 벚꽃이 깨진 창문을 잠시 엿보다 가버리고 이후의 긴 그늘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국도를 지나쳐, 지나쳐온 봄날이었다 길 고양이 한 마리처럼 도시 외곽에서 달을 분양 받았지만 나의 열망은 달과 태양을 제본하는 것 한겨울에 만든 눈사람을 한여름에도 들여다보는 것 태양의 밀짚모자를 쓴 채 달의 털모자를 쓴 채 태양과 달은 서로의 표정을 사각사각 베어 먹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는 뜨겁고 차가운 두 얼굴은 그냥 놔두시길, 괜한 관심으로 눈썹과 코와 입술을 그려 넣지 마시길, 지금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해의 환했던 벚꽃과 어느 여름밤의 뜨거운 포옹과 술렁이는 꽃그늘 따위를 모두 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