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말 / 한용운 (1879-1944) 군말 / 한용운 (1879-1944)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 衆生이 釋迦의 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伊太利이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戀愛가 自由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 현대시/한국시 2009.04.23
공양 / 안도현 (1961-) 공양 / 안도현 (1961-) 싸리꽃을 애무하는 山(산)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 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현대시/한국시 2009.04.22
골목길 / 목필균 골목길 / 목필균 종암동과 돈암동 사이에 제법 큰 골목이 있다 대형 마트에 밀려 궁색해진 현주네 슈퍼 수입 쇠고기 홍수 속에서 횡성 한우만 고집하는 수준 정육점 기성복 시대에 목숨만 붙어 있는 맞춤 양복점 명절 때나 복닥거리는 경기 방앗간 비타민 어린이집 동현교회 종암 세탁소 은주 옷 수선.. 현대시/한국시 2009.04.22
고로쇠나무 / 정호승 (1950-) 고로쇠나무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니 내 가슴을 뜯어가 떡을 해먹고 배불러라 나는 너희들의 아버지니 내 피를 받아가 술을 해먹고 취해 잠들어라 나무는 뿌리만큼 자라고 사람은 눈물만큼 자라나니 나는 꽃으로 살기보다 꽃을 키우는 뿌리로 살.. 현대시/한국시 2009.04.22
검은 빛 / 김현승 (1913-1975) 검은 빛 / 김현승 (1913-1975) 노래하지 않고, 노래할 것을 더 생각하는 빛. 눈을 뜨지 않고 눈을 고요히 감고 있는 빛. 꽃들의 이름을 일일이 묻지 않고 꽃마다 품 안에 받아들이는 빛. 사랑하기보다 사랑을 간직하며, 허물을 묻지 않고 허물을 가리워 주는 빛. 모든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치면, 숨기어 ..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거짓말 / 유안진 (1941-) 거짓말 / 유안진 (1941-)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은 어디서 마주칠까 외나무다리 건너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혀서일까 살아가는 이들과 살아오는 이들 사이에 나는 살고 있다 마주칠까 겁나 오도 가도 않고 다만, 그저 그냥 살고 있다. 거짓말도 유전된다 문 닫고 들어오고 문 닫고 나가라고 이르..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거미줄 / 정호승 (1950-) 거미줄 / 정호승 (1950-)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중에서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 현대시/한국시 2009.04.21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194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외수 (1946-)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 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더라 .. 현대시/한국시 2009.04.20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 양애경 (1956-)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 양애경 (1956-) 사람은 누구나 가까워지면 위험해진다 내가 그를 상처내거나 그가 나를 상처내거나 그래도 피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네가 몇 세기 전 어둠 같은 눈길로 내게 말했다 그 눈길이 나를 깊이깊이 상처 내어 갑자기 피가 강하게 맥박치며 넘쳐흘렀다 현대시/한국시 2009.04.20
가자미 / 문태준 (1970-) 가자미 / 문태준 (1970-)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현대시/한국시 2009.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