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 김정인 시인 십자가 / 김정인 <시와 십자가> 중에서 이마에서 가슴으로 심장 깊숙이 성호를 긋습니다 봉숭아 꽃물 들인 새끼손가락은 철 안든 아이처럼 맥도 짚지 못하며 장지만 따라 다닙니다 기도의 중심은 몸과 마음이 주님께 향하는 곳에 있다는데요 그 새끼손가락 십자가 건성으로 지고 가.. 현대시/한국시 2009.04.04
어느 봄날 / 나희덕 시인 (1966-) 어느 봄날 / 나희덕 (1966-)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 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현대시/한국시 2009.04.04
부활절에 / 김수복 시인 (1953-) 부활절에 / 김수복 (1953-) <시와 십자가>에서 사순 제4주일 저녁미사를 마치고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한 알의 밀알로만 남는다는 강론이 떠올랐다 한 알의 밀알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4월의 하늘이 되고 4월의 바다가 되었다 성당 앞 마리아 상을 지나오면서 서쪽으로 날으는 .. 현대시/한국시 2009.04.03
절벽 위 나무 십자가 / 김성춘 시인 절벽 위 나무 십자가 / 김성춘 성당 첨탑 위 흰 구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다 성당 오르는 오솔길 눈부신 들국화 한 송이 얼굴 내밀고 저녁놀이 피어 있다, 폐허처럼, 새들이 노을의 손 잡고 오솔길로 오고 있다. 바람이 분다 낡은 나무 십자가 하나 묵상에 잠겨 있다 가을 하늘 속에 깊이 .. 현대시/한국시 2009.04.03
(한국현대시) 여덟 번째 고백성사 / 김여정 시인 여덟 번째 고백성사 / 김여정 <시와 십자가>에서 천주여, 그날 저녁 무렵엔 당신의 등 뒤에서 비가 참 많이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서 계시던 다리 아래 강물도 그 강물 속 하늘도 그 하늘의 당신 머리칼도 온통 비에 젖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천주여, 당신은 다 알고 계셨지요. .. 현대시/한국시 2009.04.02
(한국현대시)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시인 (1964-2015) 바닥을 친다는 것에 대하여 / 주용일 (1964-2015) <꽃과 함께 식사>에서 모든 수직이 수평으로 눕는 바닥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진정으로 바닥을 칠 줄 아는 이는 드물다 바닥을 슬픔으로 칠 때 통곡은 통곡다워지고 웃음은 뛸 듯한 기쁨이 되기도 한다 길바닥이나 지하도 바닥 같은 생의.. 현대시/한국시 2009.04.01
(한국현대시)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시인 (1964-2015) 꽃과 함께 식사 / 주용일 (1964- 2015) <꽃과 함께 식사>에서 며칠 전 물가를 지나다가 좀 이르게 핀 쑥부쟁이 한 가지 죄스럽게 꺾어왔다 그 여자를 꺾은 손길처럼 외로움 때문에 내 손이 또 죄를 졌다 홀로 사는 식탁에 꽂아놓고 날마다 꽃과 함께 식사를 한다 안 피었던 꽃이 조금씩 피.. 현대시/한국시 2009.03.31
(한국현대시) 목련 / 정호승 시인 (1950-) 목련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목련은 피고 아들은 죽었다 진흥가슴새의 가슴에 피가 흐른다 흰나비 한 마리가 눈물을 떨구고 간다 나는 고속도로 분리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술취한 마음은 찢겨져 갈기갈기 도마뱀처럼 달아나고 고맙게도 새벽에는 봄비가 .. 현대시/한국시 2009.03.30
(한국현대시) 봄비 / 이수복 시인 (1924-1986) 봄비 / 이수복 (1924-1986) 이 비 그치며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재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 현대시/한국시 2009.03.28
(한국현대시) 부부 / 함민복 시인 (1962-) 부부 / 함민복 (1962-)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 현대시/한국시 200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