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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 김남주 (1946-1994) 솔직히 말하자 이 땅에서 자유대한에서 허위를 파헤쳐 진실을 노래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체포와 고문과 투옥과 그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잠자리에서 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유대한 사천만 인구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다, 단 한사람도 솔직히 말하자..
바람 / 김경훈[石香]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흔들리기 위해 바람을 기다리는지 흔들기 위해 바람이 부는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대 그대 하고 불러보면 나는 어느새 나뭇잎이 되어 흔들린다 그대 바람이라도 좋다 내가 나뭇잎이라도 좋다 살아있는 풍경같은 세상 그 어느 그리움인들 흔들리며 ..
창(窓) 글 / 노을 창을 닫지 말아요 아름다운 색을 지우는 까만 밤과 같이 생동감을 억누르고 혼자만 독식하는 어둠을 안고 있지 말아요 창을 열어 두어요 햇살을 뿌려 놓은 하늘 빛이 당신의 가슴에 뿌려 지도록 마음에 빛을 담아요 두려움은 절대로 창을 두드리지 않으며 당신의 마음에서 싹터 오는 ..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1958-)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에서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을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불우한 악기 허수경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
詩의 명상 산에서 배우노라 率巨 崔明雲 산은 수양을 닦는 무언 거사라 도가 깊어 말이 없고 수양이 넓어 참을 줄 알고 권세가 없어 그 어느 삶도 다스리지 않는다 예리한 눈비 태풍에도 끈질기게 인내하니 산은 도를 깨달은 성인이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운무를 안았어도 무겁다 답답하다 아니하..
대패질 반쯤 걸터앉아 목하 고심 중, 갈 길 잃은 빛 몸살에 부르르 각이 떤다. 구석 훑는 익숙한 눈살에 쌍심지 세운 등골 핏대가 핼쓱하다. 욕망이여, 욕되어 보이는가. 분노여, 부끄러워 보이는가. 모질게 돋친 가시 모난 데 찾아 둥글 둥글게 턱을 간다. 밀리는 때처럼 자만이 밀리고 원망이 밀리고 ..
조문 후 단상(망각) 바우 이훈식 어젯밤 선명하게 꾸었던 꿈도 다 기억 못 하듯이 가슴 썰어대던 아픔이 있어도 그냥 가슴에 묻어 두세요. 산천이 얼어붙은 뼈 시린 겨울 애절함으로 깊이 묻어 둔 그리움 하나가 핏빛 상사화를 피워 낸답니다. 누구나 낮 뜨거운 죄 울음처럼 가지고 사는 게 우리들의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