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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중에 하나 간혹 피를 흘린다는 일은 얼마나 즐거움인가 / 김준태 (1949-)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에서 나는 이제 시골로 돌아갈까 부다 당신이 뒷발로 차버린 시골로 돌아가리라 아침 저녁으로 이슬에 젖은 풀을 베고 간혹 가다가는 나도 모르게 낫에 손가락도 베리라 풀포기를 스쳐가는 ..
호수 / 유경환 (1936-2007) 호수가 산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이다 우리가 주님을 안을 수 있는 것은 가슴이 넓어서가 아니라 영혼이 맑아서이다 오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주님 내 영혼 맑게 하소서
<물구나무서서 보다> / 정희성 시인 (1945-) 이것은 정말 거꾸로 된 세상 집 없는 시민들이 시위하다 불타 죽은 아침 억울해 울면서 항복하듯 다리를 들고 팔목이 시도록 맨손으로 우리는 이 땅을 디딜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난이 제 탓만도 아닌데 우리들의 시대는 집이 헐린 채 제 삶의 터전을 지..
틈새 사이로 / 박광옥 (1955-) <가을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서 보이길 바랬지요 틈새 사이로 어두움일지라도 그 곳을 볼 수 있거든요 나에게 고통을 만들어 준 틈새사이로 빛이 비추려 하네요 희망의 날개 펼치어 보어며 가슴으로 품어 주셨던 님 그 속삭임은 저의 마음을 불타오르게 하네요 틈새 속..
태양계 / 이문재 (1959-) 비행기가 착륙할 때 보았다 8천 미터 상공에서 잃어버렸던 자기 그림자를 활주로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히말라야를 넘거나 태평양을 종단하는 철새들도 마찬가지다 땅이 가까워지면 서둘러 제 그림자부터 찾는다 하늘 폴이 솟아오르기만 하거나 앞으로 미래로만 달려나가..
압록강 / 고은 (1933- ) 오래 전 젊은날 아무것도 없이 하루가 공짜로 가던 시절이었다 나는 다친 다리로 걷지 못하는 날 그 빈집 곰팡이와 함께 하루를 다 보내며 압록강 같은 서사시를 쓰고 싶었다 조선이 일본에게 다 짓밟혔을 때도 압록강은 흘러갔다 조선을 넘어 만주가 짓밟힐 때도 압록강은 흘러..
미꾸라지 / 박노영 <우리 비워둔 그 자리에>에서 잡으면 그냥 손바닥에 올려 놓아야지 쥐면 자꾸만 빠져 나간다
화살 / 고은 (1933-)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안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