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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2 / 최규장 요즘은 숨겨야 할 것과 애써 지켜야 할 것이 왜 그리 많은가. 그리하여 몸에 지녀야 할 열쇠가 왜 그리 많은가. 숨겨야 할 것이 지켜야 할 것이 많을수록 나의 허리는 지닌 열쇠의 무게로 자꾸만 휘청거린다.
고마워, 내 사랑 / 원재훈 창문을 열자, 새소리가 들려온다 고마워, 내 사랑, 내 마음이 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리게 해 주는 것은 오로지 너의 사랑뿐 소나무 가지 사이에 새 한 마리 휙 날아간다 고마워, 내 사랑, 저 날아가는 새들을 보여 주다니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물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만물은 흔들리면서 흔들리는 만큼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잎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만의 잎은 제각기 잎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들판의 고독 들판의 고통 그리고 들판의 말똥도 다른 곳에서 각각 자기와 만나고 ..
사랑으로 머물러 주었으면 글 / 도현금 사모하는 애절함이 물망초 같은 그리운 마음으로 초롱초롱 맺혀 방울방울 구르더니 가슴팍을 타고 내린다. 그리움이 모락모락 꽃향기 속에 피어나 가슴 여민 곳 깊은 마음샘 골짜기에 차곡차곡 가득 차오른다. 그대 내 마음에 사랑의 둥지 틀고 내 영혼을 쓸어 ..
종소리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사람은 죽을 때에 한번은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새들도 하늘을 향해 푸른 하늘을 향해 한번은 맑고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고 죽는다는데 나 죽을 때에 한번도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길에 핏방울만 남기게 될까봐 두려..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1954-)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
향수 / 정지용 (1902-1950)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 곳 그..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일기장 / 조윤주 일기장은 기억의 냉장고야 하루에 보고 듣고 한 일 싱싱하게 보관해 주는 그냥 내버려 두면 쉽게 상해 못 먹게 되는 음식처럼 기억도 생생할 때 보관해 두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게 돼 엄마가 장 봐 온 채소를 다듬듯이 하루에 일어난 일 잘 다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