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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탁(肉鐸) / 배한봉 (1962-) 〈시와 반시〉 2005년 여름호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 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
세상의 등뼈 / 정끝별 (1964-)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께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
洗足式을 위하여 / 정호승 (1950-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중에서 사랑을 위하여 사랑을 가르치지 마라 세족식을 위하여 우리가 세상의 더러운 물 속에 계속 발을 담글지라도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마라 지상의 모든 먼지와 때와 고통의 모든 눈물과 흔적을 위하여 ..
《黄鹤楼》 / 崔颢 huang(2)he(4)lou(2) cui(1)hao(4) 昔人已乘黄鹤去,此地空余黄鹤楼。(석인이승황학거, 차지공여황학루) xi(1)ren(2)yi(3)cheng(2)huang(2)he(4)qu(4), ci(3)di(4)kong(1)yu(2)huang(2)he(4)lou(2) 옛날의 신선은 이미 황학을 타고 날아가 버리고, 지금 이 땅엔 그저 황학루만 남아 있다. 黄鹤一去不复返,白云千载空..
영기의 십자가 / 형문창 (1947-) <詩와 십자가>에서 내일은 주일입니다. 영기는 날이 어서 밝기를 기다리며 골목길에 나와 교회 쪽을 바라봅니다. 어린이 교리를 들으면 주는 빵 한 개를 일주일 내내 기다린 영기입니다. 언비를 못 내서 쫓겨난 유아원이 있는 교회지만 주일날은 원비와 상관없이 빵..
《宿建德江》(숙건덕강) 건덕강에서 숙박하며 / 孟浩然(맹호연) su(4)jian(4)de(2)jiang(1) Meng(4)hao(4)ran(2) 移舟泊烟渚,(이주박연저) 배를 옮겨 안개낀 물가에 정박시키니 yi(2)zhou(1)bo(2)yan(1)zhu(3) 日暮客愁新。(일모객수신) 해가 저물고 나그네의 수심은 새롭게 일어나고 ri(4)mu(4)ke(4)chou(2)xin(1) 野旷天低树,(야..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1950- )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
밤의 십자가 / 정호승 (1950- ) 밤의 사울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마다 노숙자 한 사람씩 못 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떤 이는 아직 죽지 않고 온몸을 새처럼 푸르르 떨고 있고 어떤 이는 지금 막 손과 발에 못질을 끝내고 축 늘어져 있고 또 어떤 이는 옆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