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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밤 – 이기철 시인

봄밤 – 이기철 시인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으로는 전할 수가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 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 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생을 살려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히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 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낮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

현대시/한국시 2024.04.05

(시) 바람은 남풍 - 김동환 시인(1901-1958)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바람은 남풍 – 김동환 시인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 역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보니 하―얀 버들꽃 웃으며 손질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나 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온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러 오르내리노라. - 1942년 삼천리사에서 나온 시집 에서 -

현대시/한국시 2024.04.05

(시) 작은 것이 세상을 만든다 - 이기철 시인(1943-)

시집을 읽다가 다시 주옥같은 시를 찾았다. 그래서 아래에 적어 본다. 아래의 시 중에서 밑줄친 부분이 가장 깊은 인상을 준 구절이다. "봉투를 뜯기 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사랑이다" 작은 것이 세상을 만든다 - 이기철 시인 종이 위에 볼펜 지나가는 소리로 세상을 들을 수 있다면 강가 모래알이 오늘은 얼마나 더 작아졌는지를 말할 수 있다 밥상 위에 수저 놓이는 소리로 세상을 들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물속의 돌멩이가 얼마나 냇물에 더 깎였는지를 말할 수 있다 한 잎을 지나 다른 잎으로 가는 애벌레의 발자욱으로 세상을 걸어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연필 글씨처럼 아늑함을 말할 수 있다 봉투를 뜯기 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사랑이다 오늘 돋는 풀잎처럼 내일을 ..

현대시/한국시 2024.04.04

(시)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 이기철 시인(1943-)

이기철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좋은 시 같아서 여기에 옮겨본다. 이 시는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은 시이다. 우리 인생을 참 아름답게 또한 통찰력 있게 표현한 시처럼 다가온다. 생은 과일처럼 익는다 – 이기철 시인(1943-) 창문을 누가 두드리는가, 과일 익는 저녁이여 향기는 둥치 안에 숨었다가 조금씩 우리의 코에 스민다 맨발로 밟으면 풀잎은 음악 소리를 낸다 사람 아니면 누구에게 그립다는 말을 전할까 저녁이 숨이 될 때 어둠 속에서 부르는 이름이 생의 이파리가 된다 불빛으로 남은 이름이 내 생의 핏줄이다 하루를 태우고 남은 빛이 별이 될 때 어둡지 않으려고 마을과 집들은 함께 모여 있다 어느 별에서 살다가 내게로 온 생이여 내 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 나무가 팔을 벋어 다른 나무를 껴안듯 사..

현대시/한국시 2024.04.04

(시) 어떤 이름 - 이기철 시인(1943-)

이기철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좋은 시가 눈에 띄어 적어본다. 어떤 이름 - 이기철 시인 어떤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에 등불 켜잔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나지막하고 따뜻해서 그만 거기 주저앉고 싶어진다 애린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이름을 부르면 가슴이 저며온다 흰 종이 위에 노랑나비를 앉히고 맨발로 그를 찾아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는 없다 연모란 그런 것이다 풀이라 부르면 풀물이, 불이라 부르면 불꽃이 물이라 부르면 물결이 이는 이름이 있다 부르면 옷소매가 젖는 이름이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이름을 부르면 별이 뜨고 어떤 이름을 부르면 풀밭 위를 바람이 지나고 은장도 같은 초저녁별이 뜬다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부를 이름 있어 가슴으로만 부를 이름 있어 우리의 하루는 풀잎처럼 살아 있다

현대시/한국시 2024.04.03

(시) 눈뜬 장님 – 오탁번 시인(1943-)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눈뜬 장님 – 오탁번 시인(1943-) 연애할 때는 예쁜 것만 보였다 결혼한 뒤에는 예쁜 것 미운 것 반반씩 보였다 10년 20년이 되니 예쁜 것은 잘 안보였다 30년 40년이 지나니 미운 것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눈뜬 장님이 되었다 아내는 해가 갈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나 보다 지난 날이 빤히 보이는지 몇 십년 전 내 구린 짓 까발리며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장님이 된 노약자한테 그러면 못써

현대시/한국시 2024.04.01

(음악) 비틀즈(The Beatles)의 <Let it be>

비틀즈의 Let it be는 젊었을 적부터 익히 들어왔던 노래인데,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가사에는, 가사의 내용에는 주목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제 라디오에서 이 음악을 듣다가 Mother Mary라는 말, 성모 마리아라는 말이 들려, 가사 내용이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한국어 번역은 다른 사람의 번역을 참고해 내가 해 보았다. 이 노래는 종교적인 내용이라고 생가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이니, 가사에 등장하는 성모 마리아를 다른 사람(예컨대, 어머니, 아버지, 은사, 멘토 등)으로 대입해서 생각해도 좋을 듯 싶다. 이 노래는 무엇보다 Let it be(그냥 둬)라는 말로 대표되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는 내용이니만큼, 힘을 내야 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들으면 좋을 것 같다...

음악/음악 202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