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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무 같은 사람 – 이기철 시인

나무 같은 사람 – 이기철 시인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이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놓고도 제 모습 땅속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이 안 보이는 마음속에 놀 같은 방 한 칸 지어 그와 하룻밤 자고 싶다 햇빛 밝은 날 저자에 나가 비둘기처럼 어깨 여린 사람 만나면 수박색 속옷 한 벌 그에게 사주고 그의 버드나무잎 같은 미소 한 번 바라보고 싶다 갓 사온 시금치 다듬어놓고 거울 앞에서 머리 빗는 시금치 같은 사람, 접으면 손수건만 하고 펼치면 놀만 한 가슴 지닌 사람 그가 오늘 걸어온 길, 발에 맞는 편상화 늦은 밤에 혼자서 엽록색 잉크를 찍어 편지 쓰는 사람 그..

현대시/한국시 2024.04.07

(시) 연가(戀歌) - 이근배 시인(1940-)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이근배 시인은 예전에 라디오에서 여러 차례 시와 시인들에 관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었던 적이 있어 이분의 책을 따로 사서 읽은 적은 없지만 방송을 통해서나마 직접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던 인연이 있는 친숙한 시인이다. 연가(戀歌) - 이근배 시인 바다를 아는 이에게 바다를 주고 산을 아는 이에게 산을 모두 주는 사랑의 끝끝에 서서 나를 마저 주고 싶다.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 풀이면 풀 내 마음 가 닿으면 괜한 슬픔이 일어 어느새 나를 비우고 그것들과 살고 있다. -시집 중에서 **시인 소개** 이근배 시인·시조시인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61~1964년 경향, 서울, 조선, 동아, 한국 등 각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 ..

현대시/한국시 2024.04.07

(시)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답다 - 이기철 시인(1943-)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시인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있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현대시/한국시 2024.04.07

(시) 산중문답 제3장 – 신석정(1907-1974)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산중문답 제3장 – 신석정(1907-1974) 구름이 떠가며 무어라 하던? 골에서 봉우리에서 쉬어가자 합데다 바람이 지내며 무어라 하던? 풀잎에 꽃잎에 쉬어가자 합데다 종소린 어쩌자고 메아리 한다던? 불러도 대답 없어 외로워 그런대요 누구를 부르기에 외로워 그런다던? 불러도 대답 없는 사람이 그립대요

현대시/한국시 2024.04.06

(시) 송가 – 여자를 위하여 – 이기철 시인

아래의 시도 시집을 읽다가 심쿵했던 시다. 송가 – 여자를 위하여 – 이기철 시인 너를 이 세상의 것이게 한 사람이 여자다 너의 손가락이 다섯 개임을 처음으로 가르친 사람 너에게 숟가락질과 신발 신는 법을 가르친 사람이 여자다 생애 동안 일만 번은 흰 종이 위에 써야 할 이 세상 오직 하나뿐인 네 이름을 모음으로 가르친 사람 태어나 최초의 언어로, 어머니라고 네가 불렀던 사람이 여자다 네가 청년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패배한 뒤 술 취해 쓰러지며 그의 이름 부르거나 기차를 타고 밤 속을 달리며 전화를 걸 사람도 여자다 그를 만나 비로소 너의 육체가 완성에 도달할 사람 그래서 종교와 윤리가 열 번 가르치고 열 번 반성케 한 성욕과 쾌락을 선물로 준 사람도 여자다 그러나 어느 인생에도 황혼은 있어 네 걸어온..

현대시/한국시 2024.04.06

(시) 봄밤 – 이기철 시인

봄밤 – 이기철 시인 가난도 지나고 보면 즐거운 친구라고 배춧국 김 오르는 양은그릇들이 날을 부딪치며 속삭인다 쌀과 채소가 내 안에 타올라 목숨이 되는 것을 나무의 무언으로는 전할 수가 없어 시로 써보는 봄밤 어느 집 눈썹 여린 처녀가 삼십 촉 전등 아래 이별이 긴 소설을 읽는가 보다 땅 위에는 내가 아는 이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서까래 아래 제 이름 가꾸듯 제 아이를 다독여 잠재운다 여기에 우리는 한 생을 살려왔다 누가 푸른 밤이면 오리나무 숲에서 비둘기를 울리는지 동정 다는 아낙의 바느질 소리에 비둘기 울음이 기워지는 봄밤 잊히지 않은 것들은 모두 슬픈 빛깔을 띠고 있다 숟가락으로 되질해 온 생이 나이테 없어 이제 제 나이 헤는 것도 형벌인 세월 낮에 잘린 봄풀이 작년의 그루터기 위에 또 푸르게 ..

현대시/한국시 2024.04.05

(시) 바람은 남풍 - 김동환 시인(1901-1958)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바람은 남풍 – 김동환 시인 바람은 남풍 시절은 사월 보리밭 역에 종달새 난다. 누구가 누구가 부르는 듯 앞내 강변에 내달아보니 하―얀 버들꽃 웃으며 손질하며 잡힐 듯 잡힐 듯 날아나 버린다 바람이야 남풍이지, 시절이야 사월이지, 온종일 강가서 버들꽃 잡으러 오르내리노라. - 1942년 삼천리사에서 나온 시집 에서 -

현대시/한국시 202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