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기의 십자가 / 형문창 (1947-) <詩와 십자가>에서 내일은 주일입니다. 영기는 날이 어서 밝기를 기다리며 골목길에 나와 교회 쪽을 바라봅니다. 어린이 교리를 들으면 주는 빵 한 개를 일주일 내내 기다린 영기입니다. 언비를 못 내서 쫓겨난 유아원이 있는 교회지만 주일날은 원비와 상관없이 빵..
《宿建德江》(숙건덕강) 건덕강에서 숙박하며 / 孟浩然(맹호연) su(4)jian(4)de(2)jiang(1) Meng(4)hao(4)ran(2) 移舟泊烟渚,(이주박연저) 배를 옮겨 안개낀 물가에 정박시키니 yi(2)zhou(1)bo(2)yan(1)zhu(3) 日暮客愁新。(일모객수신) 해가 저물고 나그네의 수심은 새롭게 일어나고 ri(4)mu(4)ke(4)chou(2)xin(1) 野旷天低树,(야..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1950- )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 내린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 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
밤의 십자가 / 정호승 (1950- ) 밤의 사울 하늘에 빛나는 붉은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십자가마다 노숙자 한 사람씩 못 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떤 이는 아직 죽지 않고 온몸을 새처럼 푸르르 떨고 있고 어떤 이는 지금 막 손과 발에 못질을 끝내고 축 늘어져 있고 또 어떤 이는 옆구..
나무 / 정운헌 <詩와 십자가>에서 저 나무들이 행복해 보였어요 무성한 꽃과 잎들 그늘이 짙었지요 한없이 바람에 출렁이고 햇빛에 반짝였어요 저도 함게 출렁이고 반짝이고 싶었어요. 겨울이 되어서야 저는 보았어요 나뭇가지마다 십자가가 아닌 것이 없고 온몸으로 그 나뭇가지들..
내 젊음을 앗아간 탄전지대[나의 문학, 나의 삶] 나는 화전민火田民의 아들이었다. ‘화전민’이란 들판에 땅이 없어 산골짝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궈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이사를 갔는데, 화전민이 되기 위해서였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
움직이는 십자가 / 임지현 깊이 패인 주름살 십자가를 그었다. 거슬러가는 시간 앞에 무릎 꿇고 팽팽한 이미 위에 잔금을 새기면서 새롭게 일어서는 아침 햇살 앞에 살땀을 흘리면서 허리 굽힌 삽질 흥건한 고단함을 구들장에 눕힌 날들 흠 없이 가는 시간 붙잡지 못했다. 일월이 지는 밤..
십자가의 길 / 이충우 십자가 짊어지고 가는 인생길 혼자만 무거운 것 아닐 터인데 조금씩 편한대로 잘라내다가 나중엔 팔랑개비처럼 만들어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렸습니다. 어느 날 골이 깊은 산길을 만나 묵묵히 땀흘리며 걸어온 이들 사다리 대신 걸쳐 가는 걸 보고 아! 그때서야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