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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 고은 (1933-)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십 년 동안 가진 것 몇십 년 동안 누린 것 몇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던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뭘 써요? 뭘 쓰라고요?’ / 덕치초 3년 문성민 시써라 뭘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서 내라고! 내. 제목을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니 맘대로 쓰라고. 뭘 쓰라고요? 1번만 더하면 죽는다. 뭘 쓰라고요? 이 녀석아! 장난하냐! 이 시는 시인 김용택 님이 제자들과 수업하는 과정에서 ..
이빙구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산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말 아무 움직임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감은 국군을 본다. 푸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父母 / 김소월 (1902-1934) <김소월시집>에서 落葉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來日날에 내가 父母되어서 알아보랴?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1902-1934) <김소월시집>에서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金모레 빛, 뒷門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江邊 살자.
목뼈 맞추기 / 전주호 <슬픔과 눈 맞추다>에서 목뼈가 욱신거려 통증클리닉을 찾았다. 치료실 1인용 침대에 엎어져 심판을 기다린다. 의사가 이곳저곳을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경추 2번이 뒤틀어졌군요. 흉추 6번도 뒤틀어졌구요. 언제부터일까. 내 삶의 골조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무거운 꽃봉..
사랑이란 / 김후란 (1934-) 사랑 이란 몸을 굽혀 너의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외롭고, 슬프고, 즐겁고, 화난 내가 미칠 것 같은 것이다. 내가 지상의 왕과 같은 것이다. 조락 직전의 은행 나무는 스스로 황금빛 물결을 쏟으며 고고히 열매 맺는 기쁨을 가졌다. 무심한 세월에 솟구쳤던 미움들이 일순 와르..
사랑할 원수가 없어서 슬프다 / 정호승 (1950-)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중에서 어느 가을날 시신 없는 영결미사에 참석하고 돌아와 내가 살아온 삶과 내가 살고 싶은 삶 사이에다 침을 뱉았다 내가 고통받을 때마다 하느님도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워 내가 거역했던 운명과 내가 받아들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