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
(시)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3. 16. 14:02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의 "느낌 한 스푼"에 소개된 산문시이다. 어머니의 물감상자 – 강우식 시인 어머니는 시장에서 물감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물감장사를 산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온갖 색깔이 다 모여 있는 물감상자를 앞에 놓고 진달래꽃빛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진달래 꽃물을, 연초록 잎새들처럼 가슴에 싱그러운 그리움을 담고 싶은 이들에게는 초록꽃물을, 시집갈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쪽두리 모양의 노란 국화꽃물을 꿈을 나눠주듯이 물감봉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눈빛처럼 흰 맑고 고움 마음씨도 곁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장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이 지상에..
-
(시)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현대시/한국시 2024. 3. 16. 13:57
아래의 시는 3월 14일 목요일 주현미의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하루만의 위안(慰安) - 조병화 시인(1921-2003)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 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 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시방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
-
(시) 십일조 - 도종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4. 3. 14. 21:49
십일조 - 도종환 시인 새벽에 깨어 블라인드 틈을 손가락으로 열었더니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밤안개의 꼬리가 강 하류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게 보인다 어머니 새벽미사 나가실 시간이다 어머니처럼 꼬박꼬박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하느님과는 자주 독대를 한다 독대를 한다고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엊그제 핀 상사화가 일찍 졌다는 말 어제 하루와 두끼 식사에 감사하고 어제도 되풀이했던 실수와 하지 말았어야 했던 말 분노하는 이들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 그런 시시콜콜한 말을 주고받는다 주로 내 혼잣말이 길고 그분은 듣기만 하실 때가 많다 내 아침기도가 고요로 채워져 있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교황님과 독대할 순 없어도 하느님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건 고요 덕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꼬박꼬박 바치지는 못하지만..
-
(시) 세노야 – 고은 시인(1933-)현대시/한국시 2024. 3. 11. 15:27
세노야 라는 시는 가수 양희은이 불러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노래이다. 세노야 라는 말이 일본 어부들이 부르는 노래의 후렴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 시를 쓴 고은은 예전에 몇 년도인가 미투 운동 때 모든 걸 내려놓은 적이 있다. 세노야 – 고은 시인(1933-)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세노야 세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
(시) 바다 수선집 – 강영환 시인(1951-)현대시/한국시 2024. 3. 11. 10:20
아래의 시는 오늘 의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되었다. 라디오로 들었는데도 이 시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듣는 맛이 좋았는데, 읽어보아도 읽는 맛이 좋다. 이 시는 심지어 유머가 담겨 있고 절로 웃음이 피어오르게 하는 훌륭한 작품이다. 한 폭의 수채화, 한 편의 단편영화를 글로 옮겨놓은 듯하다. 참 좋은 시다. 바다 수선집 – 강영환 시인(1951-) 자갈치 해안길 집과 집 사이 세를 얻은 틈새에 틀 한 대 갖다 놓고 옷을 수선해 주는 할머니가 있다 옷을 줄이거나 늘이거나 바다로 나서는 수부들 못 고치는 옷이 없다 소문을 듣고 가끔 바다도 수선하러 들른다 급히 오다 넘어져 무릎 찢어진 파도도 들들들들 한두 번 박으면 말끔하다 제멋에 뛰어오르다 갈매기에게 등짝을 물어뜯긴 숭어도 한 박음이면 깜쪽같다 어디 수선..
-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시인 (1915~2000)현대시/한국시 2024. 3. 4. 21:50
아래의 시는 오늘 에서 불렸던 가곡이다. 본래 서정주 시인의 시에 김주원 님이 곡을 붙여 가곡이 되었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시인 (1915~2000)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시) 방문객 – 정현종 시인(1939-)현대시/한국시 2024. 3. 3. 10:30
아래의 시(詩)는 2017년 tvN 월화 드라마 에 소개된 시이다. 아래의 시 역시 정현종 시인을 검색하다가 앞의 시 "하늘을 깨물었더니"와 함께 새로 발견한 보석같은 시이다. 본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2016년도에도 이미 소개했던 시이다. 방문객 – 정현종 시인(1939-)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